말하기
* 노산 전경진 회장
- 전 원광보건대학 총장
- (사)솔솔송자원봉사대 요가교실 회장
오늘은 말하기에 대하여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서는 무서운 세가지가 있다 하여 삼외(三畏)라고 합니다.
첫째는 무사(武士)의 검봉(劍鋒)입니다. 무사의 칼은 생명을 앗아 갈 수 있기 때문에 무섭다고 합니다. 둘째는 문사(文士)의 필봉(筆鋒)입니다. 글 쓰는 이가 글 쓰기에 따라서는 생명뿐이 아니라 명예와 가문의 파탄까지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에 무섭다고 합니다. 셋째는 변사(辯士)의 설봉(舌鋒)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혀끝의 놀림에 따라서는 생명뿐이 아니라 일체를 다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섭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쓰면 무한한 복도 지을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옛 시조에
말하기 좋다하여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생각지도 않은 시비 속에 휘말려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견문이나 경험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말 한마디에 천량 빚도 갚는단 말이 있을 정도로 복을 짓는데도 큰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잘하면 큰 복 잘 못하면 큰 재앙을 불러오는 그야말로 양날의 칼인 것이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아우가 전주 검찰청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날 아우를 만나려고 전주에 갔더니 그날 마침 아우가 전주고등학교 동창들을 대접하는 날이라고 같이 가자고 아여 그 자리에 합석했습니다. 동창 8명이 참석했는데 그들의 화제를 엿들어 보니 그때 아우가 수사하고 있던 사학 비리 이야기였습니다. 이사장의 비리였으나 자연히 교장도 관련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교장은 제가 잘 아는 분이었기에 나도 한 마디 참견을 했습니다. "그 분은 내가 잘 아는 분인데 참 좋은 분"이라고 한 마디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분이 익산까지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검사에게 좋게 말해 주어서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전했는지 모르지만 용케도 본인의 귀에 들어가 저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엇습니다. 면전에서 추켜세우는 것은 거북할 때도 있지만 듣지 않는 곳에서 하는 칭찬은 반드시 본인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요, 그로인해 받게 되는 증오와 원망은 면전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불교에서는 열가지 죄업 가운데 몸으로 짓는 것 세가지, 마음으로 짓는 것 세가지, 입으로 짓는 것 네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입으로 짓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악한 말을 하는 것, 망령된 말을 하는 것, 비단같이 꾸미는 말을 하는 것,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 이 네가지가 입으로 짓는 죄업입니다. 원불교에서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는 것,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면 상대방에게 원한을 품게 만들기도 하고 본인의 인격에 누가 되기도 하며 지탄과 멸시를 받고 시체말로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조심하여야 할 것은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말을 어떻게 해야 할가요.
첫째, 인륜 도덕에 반하는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농담이라도 입에 담아서는 인격을 의심 받게 됩니다. 고상한 말이 아주 습관이 되도록까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상생적인 말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의욕을 북돋아 주고 용기를 내게 하며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말이어야 하겠습니다. 긍정적이요, 건설적인 말이어야 합니다. 남을 낙담시키고 의욕을 꺾으며 비관하게 만드는 것은 큰 죄악이라는 것을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셋째, 때와 장소에 맞는 말이어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하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마누라가 답답해서 도시락을 싸주며 어디 가서 말을 좀 배워 오라고 내보냈더랍니다. 이 사람이 한참 돌아다녀보아야 말을 배울데가 없어 어디로 갈까 망설이고 있는 데 마침 앞에 소금장수가 가기에 뒤따라 갔습니다. 소금장수는 고개길로 들어서서 올라가더니 고개 정상에 올라가서 지게를 부려놓고 "방금 무어라 했소. 이 도시락을 줄테니 방금 한 말 다시 한번만 해주시오."했습니다. 이 말을 배워가지고 돌아온지 얼마 지나서 동네 초상이 났습니다. 철야를 하는 사람들이 방에 삥 둘러 앉아서 목침을 돌려 가며 이야기 한마디 씩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 차례가 되니까 일어서서 방문을 발로 차서 열더니 "어이 시원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상주가 쫓아와서 "네가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것이 그렇게도 시원하냐."라며 몽둥이로 쫓아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요 잘 못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칭친을 많이 하는 것을 습관화합시다. 제가 잘 아는 한 분도 앉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칭찬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에게는 적이 없으며 호감을 사고 모든 사람의 옹호와 협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의 흉이나 보고 악담이나 하는 사람은 구설수에 오르기 쉽고 대상자의 악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요새말로 왕따 당하기 마련입니다. 좋은 말에 대한 조금의 관심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덧붙일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의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좀 알고 지내는 사람이 찾아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카네기에게는 한 마디 기회를 주지않고 장시간 혼자만 이야기 하더니 가면서 "오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고 나니까 마음이 흡족하여 그것을 카네기가 말한 것처럼 착각하고 나온 말일 것입니다. 흔히 지루한 말을 하면 고개를 돌리거나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하여 노골적으로 듣기 싫다는 표시를 합니다만 그것은 현명한 처세술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조금만 참고 듣기만 하면 말하는 사람의 호감을 사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을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은 복도 지을 수 있고 죄도 지을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알고 과히 힘 들이지 않고도 큰 복을 지을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해야 될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