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포럼] “시민운동, 지역으로 내려가라”
박원순 변호사 발제…복지·농업발전 등 할 일 무궁무진
“시민사회운동의 희망은 지역과 현장의 삶 속에 있습니다.”
1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11차 ‘한겨레 시민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박원순(변호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로는 일회적인 표현”이라며 “시민단체가 지역과 현장에서 실천적 화두를 끄집어내 시민들의 일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올해 시민운동을 돌아보며 “내년까지 이어질 위기의 계절이 왔다”고 평가했다. 이런 진단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여러 화두들을 시민사회가 통찰력 있는 눈으로 끄집어내지 못한 점”을 들었다. 이와 함께 외부적 요인으로 △시민사회에 친화적이지 않은 이명박 정부 △시민운동의 ‘예비군’ 양성 구실을 해온 학생운동의 쇠퇴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 등도 꼽았다.
“시민운동, 지역으로 내려가라”
시민운동이 맞닥뜨린 여러 어려움은 ‘돈 문제’로 귀결된다는 게 박 이사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회원이 내는 후원금으로 시민단체가 운영되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기부는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감성적 기부였는데, ‘원하는 사회 변화를 가져올 곳에 돈을 낸다’는 이성적 기부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에선 600여개에 이르는 지역재단이 이런 구실을 하고 있다”며 “한국에도 시민들이 믿고 돈을 맡길 수 있는 이런 재단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동력으로 ‘지역’을 주목했다. 그는 “지역에는 복지, 농업 발전, 특산품 상품화 등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며 “젊은 활동가들은 중앙 중심적인 사고를 깨고 지방에서 새로운 시민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자기만의 상표를 가진 독일의 4천여 ‘소시지 농가’를 예로 들며 “지역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 생산자를 통해 지역 경제 공동체가 형성되면 개방 경제의 충격에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해결하려면 지역 공동체 단위의 경제 규모를 확립해 가는 것이 지방 건설 경기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바른 방향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한 참가자가 촛불집회가 끝난 뒤 공권력에 의한 시위자 탄압에 대해 언급하자 박 변호사는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다른 하위 법에 우선하는 가치”라며 “이 정부가 법치주의를 강조하는데 도로교통법 등 하위 법을 들어 우선하는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