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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그것이 알고싶다 - 소록도, 그 섬으로 간 사람들

solsolsong 2006.01.07 16:48 조회 수 : 2601 추천:4

소록도 가족

제작후기 - 소록도, 그 섬으로 간 사람들

                   장 경 수 / SBS PD

   "선배님,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지난 여름, 같이 일하던 후배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한 장의 편지를 내밀었다. 지방의 한 교수가「그것이 알고싶다」앞으로 보낸 제보였다.

  편지의 내용은, 과거 일제시대 때 소록도에서 단종이란 이름의 거세수술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행해졌고, 731부대를 방불케 하는 생체 실험이 자행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었으나,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이라 일단 관심이 갔다.

  시사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많은 제보를 접하는데,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단초가 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제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역시 그러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제보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확인을 위해 소록도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소록도 행이 결정된 후,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소 아닌가? 취재의 내용상 원생들과의 접촉은 불가피 했고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센병에 대한 나의 인식 역시 일반인의 그것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일종의 두려움과 부정적인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몇 년 전, 실종된 개구리 소년들을 한센병 환자들이 살해했을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갔을 때, 영문도 모르고 방송국에 출근했다가 흥분한 그들 시위대에 둘러싸여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강제로 접촉(?)당했던 신체 부위를 씻어 내느라 부산을 떨었던 경험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혹시 소록도에 갔다가 병에 전염되는 건 아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출발 전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소록도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그런 생각들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소록도 취재는 한센병에 대한 나의 상식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 갔다.

  소록도는 직원들이 사는 1번지와 원생들이 사는 2번지로 나눠져 있다. 그리고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자유로운 공원지대가 있다. 이 곳 공원의 아름다운 조경을 보러 온 관광객들은 그러나 아름다운 조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 공원지대의 한 귀퉁이에 과거 소록도 주민들(원생들)이 당했던 단종과 생체해부의 역사가 그대로 보존돼있다. 보기만 해도 섬뜻한 검시실과 단종대, 그리고 감금실은 당시 일제의 잔학성을 웅변하듯 남아 있다.

  지금, 당시를 기억하는 생존자는 몇 분이 채 안 남아 있다. 대부분 80세가 넘은 노인들인지라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들의 아픈 역사는 잊혀질 운명에 놓여있다. 취재진이 이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왔다는 사실에 무척 고마워했다. 병으로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들은 인터뷰를 위해 새 옷을 갈아입고, 그 동안 언제가 이날이 오면 이야기하리라 마음먹었다며 60년 전 당시 상황을 생생히 증언해 주었다.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으며, 무관심 속에 버려져 왔던 그들의 인권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강제노동과 고문,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행해진 단종수술, 생체실험으로 의심되는 독성이 있는 주사와 연고를 투여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간 사실, 사망하게 되면 빠짐없이 행해진 생체해부, 해방 이후 권력싸움의 와중에 주민 수십 명이 학살당한 사건 등등…. 일어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났지만 그러한 인권유린에 대한 역사적 규명작업이 이뤄지기는 고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한센병에 대한 우리의 인식수준이다.

  96년 경, 일본에서는 단종수술을 받은 한센병 환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고 이 소송에 100여명의 변호사가 참여해 무료변론을 맡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과거 잘못된 정책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을 유린했음을 시인하고 국민과 한센병력자들 앞에 사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일본에 어떤 문제 제기도, 국가적 차원의 보상논의도 전무한 상태이다.

  처음 소록도를 취재를 시작했을 때, 보름 정도 취재 후 방송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취재에 들어가자 마음이 바뀌었다. 취재할 것이 너무 많다고 판단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와 다시 회의를 열고 이런 아이템은 제대로 취재를 해서 제대로 방송을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장기기획으로 방향을 전환한 며칠 뒤,  MBC뉴스와 KBS 보도기획물에서 소록도의 단종수술에 대해 방송하는 것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소록도를 다녀간 후, 뒤늦게 와서 하루 정도 영상위주로 찍어가서 8·15전후에 방송한 것이었다. 정작 아쉬웠던 것은 타 방송사가 우리보다 먼저 내보냈다는 것보다도, 제대로 해야 되는 것인데 너무 서둘러 방송해 우리까지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역시 그런 우려대로 내부적으로 약간의 회의적인 시각이 생겨나 몇 번이고 윗 분(?)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 와중에 취재는 한 여름에서 한 겨울까지, 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번 취재는 하면 할수록 취재할 것이 나오는 취재, 그리고 너무나도 어려운 취재였다. 개인적으로 한센병에 관한 취재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방송이 있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조창원 전 원장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었다. 대전에서 만난 조 원장님은 60년대 오마도 간척사업 당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당시 소록도 사람들은 소망은 자립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땅을 가지고 스스로 양식을 지으며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해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소록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오마도 간척지를 일구었다. 그러나 간척한 땅을 주겠다던 약속은 정치적 이유로 지켜지지 못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속앓이를 하는 것은 소록도 사람들과 당시 소록도병원장이었던 조창원 원장 뿐, 이미 그 약속은 잊혀진 약속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 원장과 소록도 주민들의 목소리는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은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자립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희생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서 한센병이라면 연상되는 걸식의 이미지를 지우는 것, 그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 이 때문에 빚어진 일이 삼천포 비토리섬 학살사건이었다.

  해방 이후 소록도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립하는 과정에서 섬 주민들과 충돌해 28명이 집단 학살당한 이 사건 역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져, 사망자와 생존자 모두 방치된 채 40년이 넘게 흘러왔다. 현지 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그 사건으로 젊어서 남편을 잃고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며 받은 고통을 눈물로 호소했다.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히 떠올라 잠을 못 이룬다는 할머니, 40년 동안 국가의 보상이나 가해자의 사과는 없었다고 한다. 그 사건 후 현장 부근에 예배당을 짓고 섬주민과 화해를 한 것은 오히려 피해자인 한센병력자들이었다.

  이런 희생과 눈물 끝에 이룬 그들의 성공이 오늘의 한센병력자 정착마을이었다. 축산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닭과 돼지를 키우면서 전국 90여 개 마을을 건설해 자립의 꿈을 현실화 시켜 냈고, 그렇게 번 수입으로 그들은 자녀를 키워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훌륭한 성공을 이룬 그들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그것은 한센병력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숙제, 편견과의 싸움인 것이다.

  소록도를 벗어나 정착지에 살면서 그들이 낳은 2세들, 그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거나 결혼할 나이이다. 그러나 사회의 편견은 한센병에 대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때문에 그들은 친구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기 꺼릴 뿐만 아니라, 결혼을 앞둔 경우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한센병력자의 자녀라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그들을 경원시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한센병에 대한 일부의 뿌리 깊은 편견, 그 배경에는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잘못된 상식에 자리잡고 있다. 한센병은 치료 후 3일이면 균이 죽어 전염성을 상실하고, 수개월 뒤면 완치되는 이미 정복된 병이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취재진도 이런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 소록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손을 진정으로 따뜻하게 잡는데 며칠이 걸렸으니 말이다.

  잘못된 보건 상식을 바로잡는 일은 국가와 사회가 반드시 해야 될 일이다. 그 잘못된 상식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집단학살을 당했고, 지금도 그들의 2세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부모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유전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의심을 받게 되고, 심한 경우 이혼까지 당하기도 하는 2세들, 그들은 숨어서 불안에 떨며 살거나 결국 부모를 버리게 되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과학과 합리가 지배한다는 현대지만 한센병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취재 내내 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데 앞으로 꾸준히 국가와 사회, 그리고 언론이 그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취재에 응해준 한센병력자와 그 2세들, 자신들을 드러냄으로써 또 한번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세상 앞에 나선 그들의 용기에 감사드리며, 방송을 계기로 그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는 것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 solsolsong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0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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