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3
시민의신문 press@ngotimes.net
자원봉사가 어디 "할 일 없는 짓"인가
택시안의 대화는 주로 불만 투성이다. IMF가 터진 직후엔 경제 문제가 화두였고 최근 단골메뉴는 빛바랜
청문회와 여권의 신당문제다. 거친 욕설을 퍼붓거나 술이 얼큰한 사람들의 악다구니는 분노에 가까울
지경이다.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박탈감만 더한다.
"무슨 청문회가 그모양…"
74년 경으로 기억된다. 노원지역 모범운전자들이 거리에 늘어서서 인간띠로 가변차선이 됐던 때가
있었다. 당시 길음시장에서 삼선교까지 2km정도되는 왕복 4차선 도로는 출근시간이면 교통체증으로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교통당국은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치 못하고, 서민들은 출근시각에 맞추기 위해 발을 동동구르던 때
모범운전자들이 묘안을 짜냈던 것. 거듭되는 궁리 끝에 모범운전자들이 50∼60m간격으로 거리에 서서
"인간 가변차선"이 되기로 했다.
공휴일을 제외하고 30∼40여명의 운전자들은 매일 출근시각이면 거리에 섰다. 눈비오는 날도 어김없이
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미아리 고개를 껄떡대며 넘는 버스의 매연을 뒤집어 쓰길 5년. 서울시가
가변차선을 만들 때까지 이 일은 계속됐다.
"너희들이 뭔데 거리로 나와 남의 차선까지 가로막냐"고 수신호를 무시하고 대드는 운전자와 심한
말씨름을 하기도 할 때면 왠지 서글퍼지기도 했고, "추운데 수고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던 시민들을
보면 힘이 불끈 솟기도 했다.
6∼7년전부터 우리는 한달에 두차례씩 성북구 돈암동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음주운전예방 캠페인을
벌인다. 녹색교통어머니회 등과 함께 매번 야광 어깨띠와 랜턴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만 시민들은 항상
반기는 표정만은 아니다. 얼마전 술한잔 걸친 사람이 대열에 끼어들어 "헛지랄하네. 집구석에서 자빠져
잠이나 자지"라며 시비를 거는 바람에 사람들이 씁쓸해하기도 했다. 할 일없는 사람들이 하는 게
봉사라는 비아냥일까.
인간띠 가변차선 추억
관청의 태도 역시 별다를 바 없다. 얼마전 길음 전철역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다가 뺑소니 오토바이에 치여
2개월가량 병원신세를 졌던 한 회원이 있었다. 우리 회원들은 경찰서 요청에 따라 매달 6차례씩 교통정리
업무를 하고 있다. 사고 뒤 경찰측에 치료비 또는 위로금이라도 달라고 요청했지만 보상규정이 없다며
외면했다. 심지어 교통정리를 하다 사망하는 운전자도 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공치사하자고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아니다. 경로잔치, 효도관광, 낙도어린이 초청 서울나들이, 농촌
모심기·벼베기 지원 등 모범운전자회가 하는 일은 많다. 상대방을 둘러볼 틈도 없이 각박해진
현실이라지만 봉사활동을 "한가한 짓"정도로 폄하하지 말길 바란다. 얼마전 시민의신문에 소개됐지만
도박으로 운전자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공동체 균열 막아야
세상이 각박하다는 것. 이것은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 공동의 책임이다. 공동체가 균열되는
사회에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책임을 나눠지기 위한 실천이기에 아름답다.
최복식씨(54)는 현재 성북 모범운전자회 회장이며 서울 경찰청 교통정보 모니터요원이자 교통규제
심의위원이다. 그는 또 검찰청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위원이기도 하다. 전 서울 모범운전자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지난해 5월 교통안전에 앞장선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 solsolsong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08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