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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비 효 과

원광정보예술고등학교 1학년 노 초희

내성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한데다가 말주변도 없는 그저 평범하고 조용하기만 하던 내가 이렇게나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변하게 된 것은 봉사활동이란 걸 시작하면서부터 이다. 내가 말하는 봉사활동이란 중학교에서 해왔던 시간 채우기에 급급한 하나의 수단이 아닌 자원봉사를 말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 해 모든 것들이 무섭고 낯설게만 느껴질 때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다름 아닌 봉사동아리 ‘솔솔송 인터랙트’의 신입생 모집 홍보물 이였다. 홍보자료의 사진 속 동아리언니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모두가 웃고 있었다. 배산 정화활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주울 때도, 왕궁 병력촌에서 어르신 분들을 모실 때에도, 동그라미 재활원과 수양의 집에서 장애인들과 할머니 분들의 발을 마사지하며 대화를 나눌 때에도 모두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홍보자료는 뭔가 어설픈 점이 많이 보였지만, 그래도 사진만은 가슴에 와 닿았다. 나도 저렇게 행복한 얼굴로 웃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솔솔송 인터랙트’에 가입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은 처음 이였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가는 봉사활동을 모조리 가리라, 절대로 빠지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있었다. 그런데 점점 봉사활동에 대한 사소한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바퀴벌레 떼처럼 마구마구 불어나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토요일이면 놀러가는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에 비해 봉사시간에 쫓겨 땡볕에서 뜨거운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나를 보니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역시, 봉사활동은 힘들기만 할뿐 전혀 행복해지지 않아!’라고 내 안의 미운 마음이 온갖 감언이설로 나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내가 꾐에 넘어가려는 찰나의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빛이 들어왔다. 그 빛은 깨끗해진 배산을 보고 뿌듯해진 내 마음과 이런 하찮은 나에게도 진심어린 덕담을 해 주시는 왕궁 어르신들과 수양의 집 할머니들의 정이였다.‘나도 이렇게 좋은 일들을 해낼 수 있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구나.’하는 생각에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고쳐먹고 어서 하루 빨리 토요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어쩌다가 비가 와서 배산 정화활동이 취소되거나 왕궁과 수양의 집에 다른 단체가 방문하게 되거나 동그라미재활원에 다른 행사가 잡혀서 봉사활동이 취소라도 되는 날에는 실연이라도 당한 것처럼 슬퍼진다.

 

다른 배산정화활동과 동그라미재활원도 좋지만, 봉사활동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봉사활동이 둘이 있다. 하나는 왕궁이고 다른 하나는 수양의 집 봉사활동이다. 왕궁 봉사활동은 처음에는 솔직히 꺼려져서 가기 싫었던 곳 중 하나였다. 시골이라 그런지 천연거름 냄새가 갈 때마다 코를 찔렀고, 여기저기서 파리들이 윙윙 거리고 있었다. 더욱이 꺼려지는 것은 한센병(나병이나 문둥병이라고도 불려졌으나 한센병이라고 바뀜.)을 앓았던 분들 뿐이라 손과 발의 생김새가 성하지 않아서 징그럽다 못해 끔찍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 건지 모르시는 건지 방문 할 때마다 반겨주시고 환영해주시고 예뻐해주시고 챙겨주셨다. 제일 기억에 남는 때는 5월 어버이달을 맞이하여 종이카네이션과 간식봉지를 들고 찾아갔을 때이다.

 그 때 알게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순수한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양면테이프로 붙여주는 종이카네이션을 받고 연신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는데 나도 왠지 모르게 할머니의 순수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그건 아마도 사랑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친할머니와 친손녀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카네이션을 벽 한쪽에 붙여 놓으셨다. 그 벽에는 글귀와 모양이 제각각인 카네이션들이 줄줄이 정렬해 붙어있었다. 할아버지는 매년 받으신 카네이션을 이렇게 줄곧 소중하게 모아오셨다고 한다. 기뻐하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마치 대여섯 살 어린 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해 보였다.

그러면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설레는 기분과 가슴 속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이 작은 손길에도 기뻐하시고 웃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는 우리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헤어지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나도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여기의 어르신 분들은 정이 들어서 명절 때에만 가끔 볼 수 있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보다도 더 친하고 좋다.

갈 때마다 덕담 또한 아끼지 않고 많이 해주셔서 평일동안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에너지 충전이 되는 것 같다. 이곳에 다녀오면 나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그래서 나는 왕궁 봉사활동 가는 날이 최고로 행복하고 기다려지는 날이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곳은 수양의 집이다. 여기도 처음엔 가기 싫어했다. 수양의 집에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할머니 분들의 발마사지를 하기도 하고 말벗도 해 드리는 곳이다. 남의 발을 마사지 한다는 게 물론 꺼려지고 싫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오기 싫어했던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사실 난 손아귀 힘이 약하다. 다른 친구들도 발마사지는 처음이라 나처럼 솜씨도 무척이나 서툴렀다.

그래도 다들 손아귀 힘은 세서 방법은 틀려도 할머니 분들은 처음치고는 잘한다고들 칭찬 해 주셨다. 하지만 난 그 애들과 달랐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는데도 격려는 커녕 할머니는 시원찮다고 화를 내셨다. 다른 언니한테 마사지를 받으면서 졸고 계시는 할머니가 너무나 미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30분 가까이 열심히 했던 할머니의 발을 처음부터 다시 마사지하고 있는 그 언니도 너무나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난 결국 할머니들 손톱에 매니큐어나 발라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해내는 것을 혼자서만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화도 나고 비참해지기까지 해서 그날 하루는 너무도 우울했다. 속이 상해서‘이딴 곳에 내가 다시는 오나봐라!’하고 다신 안 오리라 다짐했다. 집에 돌아가 생각 해 보니 내가 그 곳에 발길을 끊는다면 마음 상할 일이 없겠지만 그것은 결국 도망치는 것 밖에 되지 않고 손해를 보는 쪽은 나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 두고보라구! 다음번엔 요령을 터득해 가서 놀랄 만큼 잘 해내고 말겠어!’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엄마 발을 가지고 연습 해 보았다.

그 결과 발마시지의 순서와 방법은 완벽하게 외워지기는 했지만, 역시 문제는 나의 세지 못한 손아귀 힘에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고민하는 사이 어느 새 또다시 수양의 집 가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다시 그 할머니 앞에 섰다. 그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 하시는 표정이었다. 그 할머니를 보자 나는 그곳을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마사지 준비를 분주히 시작했다.

이번에는 잘해서 절대로 시원찮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양반다리를 하고 편하게 무릎위에 할머니의 발을 올려놓고 마사지를 하는 데에 반해 나는 온몸을 던져서 마사지를 했다. 말하자면 엉덩이를 땅에 붙이는 일이 없었다. 무릎만 땅에 지탱해 손에 내 모든 체중을 실어서 힘을 더한 셈이다. 언니들과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면서 모두 웃었다. 그래도 나는 마사지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 결과 승리했다. 나는 그 할머니를 시원하게 해드렸고, 그 할머니는 나한테 진거나 다름없었다. 할머니가 시원하다고 해주셨을 때는 통쾌해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이런 일이 있고난 후부터 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 곳이라는 생각에 수양의 집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봉사활동이란 이런 것이다.’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힘들다. 봉사활동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의 나처럼 약아빠진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간 채우기에만 급급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것들을 전혀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배움을 얻어가는 학교에서 조차도 그렇게 채워 온 확인서들을 가지고 점수에 넣는다. 이런 게 우리 현 사회의 실상이다. 학교의 개입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진정한 봉사활동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봉사활동은 학력이든 나이든 성별이든 전혀 구애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실 된 마음을 도움을 받는 그 상대에게 아낌없이 보여줄 수만 있다면 누구든 가능하다.

꼭 이런 봉사 단체의 가입을 통해서만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주변을 향해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본다면 분명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앞만 보고 곧장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 주위를 살피어 메마른 인심과 각박하고 답답한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봉사라는 것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해 지는 것 같다. 마치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즐거우니 말이다. 난 아직 봉사활동의 걸음마 단계에 불과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걸음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올해 1년 가까이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 온 내 자신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모든 일에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부터 자신감이 마구 샘솟아 나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 지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학생 때 보단 한층 더 성숙하고 의젓해진 내가 날마다 새롭다. 이런 게 바로 봉사활동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게 되고, 싫기만 했던 청소시간이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즐거운 시간이 되고, 좀 더 부모님을 공경하게 만드는 이런 거 말이다. 봉사활동은‘실천하는 사랑’이라는 기본 바탕을 두고서 그게 커져서 나눔을 주고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서로 간의 두터운 정을 주는 것 같다.

앞으로 남은 2년도 이렇게 열심히 봉사해 나가야겠다. 오늘도 나는 즐겁게 봉사하고 있는 나에게 격려한다. “힘내!”

2007.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