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없고 하우스도 다 망가졌지만.. (수해 복구 봉사 감상)
-경남 함안 수해 복구 봉사 감상-
스스로, 육체적인 활동에 늘 소극적이고 등한시했던 그동안 삶의 철학에 대한 회의와 죄책감으로 찔리던 중에..
교당식구들의 은근한 종용과 부모님의 적극적인 부추김으로 21일 일요일에 함안 수해복구 현장에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보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편한 복장으로 과자를 씹으며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생까지 옆에 태우고 한산한 국도를 달리다 보니..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동정따위는 거의 느끼지 못하였다..
함안군청에 도착해서 경남교구사람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봉사대들을 만났을 때도 그냥 막연하게 '열심히 해야지'하는 다짐뿐이었다..
우리가 봉사할 곳은 함안군 칠서면이었다..
목이 긴 장화와 빨간 손바닥 장갑을 받아들고 보니 왠지 결연함이 솓구치는 것 같았다..
걸어서 수해복구현장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깨끗하고 차분한 시골 풍경은 내 마음을 느긋하고 흐뭇하게 만들었다..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노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맑은 도랑을 지나고, 철로가 관통하는 시골길도 지나고 나서 도착한 곳은 엄청나게 넓은 비닐하우스 단지였다..
철제 골조가 정말 유연하게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아예 폭삭 내려 앉은 곳도 있었다..
양쪽의 하우스단지들 중간에 난 길에는 여러 가지 비닐하우스 철거에 따른 폐기물로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나에게 처음 부여된 임무는 축사의 비닐을 줍는 것이었다..
축사안은 온통 진흙으로 가득차 있어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큰 결심을 하고 온 터라 열심히 아무생각없이 쓰레기를 주웠다..
평소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시궁창같은 물에까지 손을 담궈, 보이는 데로 비닐을 줍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쓰레기를 줍던 중 농로에서 죽어서 납작하게 된 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미물이고 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수해피해현장에서 보게되니 더없이 처량해 보였다..
그래서 그 개구리를 길가에 묻어 주었다..
축사에서 일을 하시던 동네 아주머니께서 '개구리뿐만 아니라 축사 안에 있던 동물들이 다 죽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런 상관없는 개구리의 죽음에도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자식같이 키우던 가축들의 죽음을 손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보고 있어야 했던 그분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축사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맞은편의 오이하우스였다..
축사쪽보다 피해가 상당히 컸다..
하우스의 규모도 엄청 났거니와 주위 둑이 무너지면서 쓰레기매립지의 쓰레기들이 떠내려와 정말 산떠미같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때 밥을 먹으면서 "오이하우스"에서 일했다고 하니까 누군가 "오이가 있더냐?'고 물어 보았는데..
정말 그 큰 오이 하우스에서 오이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풍이 오기전 그 하우스안에는 2~3일이면 수확이 가능한 다 자란 오이들이 있었다고 하우스 주인이 말하시는데..
'얼마나 아깝고 상심이 컸을꼬.'하고 동감이 되었다..
그러고나서 다시 오이하우스를 보니..
내 눈에 보이는 비닐과 쓰레기들은 단순히 시키니까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고, 그것들이 땅속에 그대로 묻히면 이 다음 농사도 짖지 못하게 될게 뻔한 일이었다..
태풍피해를 입으면 땅을 못쓰게 된다고 하는 말이 무슨말인지 잘 몰랐는데..
눈으로 직접 보니..
수해는 단순히 물에 잠겨 농작물과 시설물을 못쓰게 되는 피해 이상의 엄청난 것이었다..
오이하우스 주인은 하우스 근처에 있는 컨테이너에 살고 계셨는데..
그 컨테이너는 동네 끝까지 떠내려가 살 집도 없어 아는 동생네 집에 얹혀 있다고 하셨다..
집도 없고 하우스도 다 망가졌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한달안에 쓰레기를 치우고 하우스를 다시 지어서..
겨울에 수확할 농작물을 재배할 거라고 하셨다..
일상의 작은 시련에도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그 아주머니의 말씀은 아주 큰 충격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재해를 입고도 이렇게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분들 앞에서 나자신이 정말 초라하고 나약하게 느껴졌다..
그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나의 죄업들을 주워 담는다는 생각으로 정말 죽기 살기로 열심히 쓰레기를 치웠다..
오후동안 네푸대도 넘게 하우스의 비닐을 줍고, 오이 가지를 지탱하던 집게를 떼고 나니 하우스 안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처음에 하우스 안을 들어서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눈 앞의 비닐들을 줍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지나온 길이 깨끗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보람을 느꼈고..
내가 한 일에 감격하여 마음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그 하우스 주인과 동감이 되어 일을 하고 난 뒤에 하우스를 보니..
아직도 구석에 남아 있는 쓰레기들과 철거해야 할 철재 골조들, 앞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농사와 여러 가지 경제적인 걱정들로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시간이 다 되어 하우스를 나서면서 구석에서 아직도 쓰레기를 줍고 있는 주인과 그 아들을 보니..
마음이 무척이나 처연해졌다..
'나는 오늘 하루의 경험으로 끝나고 말 일이지만..
이 분들에게는 언제까지나 마음에 남는 아픔의 흔적이겠구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는 내가 지나온데로 깨끗해지던 하우스의 고랑이 떠올랐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지나고 보았을 때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깨끗하고 부끄럼없는 길이 되도록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겠다.
* solsolsong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08 20:44)
-경남 함안 수해 복구 봉사 감상-
스스로, 육체적인 활동에 늘 소극적이고 등한시했던 그동안 삶의 철학에 대한 회의와 죄책감으로 찔리던 중에..
교당식구들의 은근한 종용과 부모님의 적극적인 부추김으로 21일 일요일에 함안 수해복구 현장에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보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편한 복장으로 과자를 씹으며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생까지 옆에 태우고 한산한 국도를 달리다 보니..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동정따위는 거의 느끼지 못하였다..
함안군청에 도착해서 경남교구사람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봉사대들을 만났을 때도 그냥 막연하게 '열심히 해야지'하는 다짐뿐이었다..
우리가 봉사할 곳은 함안군 칠서면이었다..
목이 긴 장화와 빨간 손바닥 장갑을 받아들고 보니 왠지 결연함이 솓구치는 것 같았다..
걸어서 수해복구현장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깨끗하고 차분한 시골 풍경은 내 마음을 느긋하고 흐뭇하게 만들었다..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노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맑은 도랑을 지나고, 철로가 관통하는 시골길도 지나고 나서 도착한 곳은 엄청나게 넓은 비닐하우스 단지였다..
철제 골조가 정말 유연하게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아예 폭삭 내려 앉은 곳도 있었다..
양쪽의 하우스단지들 중간에 난 길에는 여러 가지 비닐하우스 철거에 따른 폐기물로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나에게 처음 부여된 임무는 축사의 비닐을 줍는 것이었다..
축사안은 온통 진흙으로 가득차 있어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큰 결심을 하고 온 터라 열심히 아무생각없이 쓰레기를 주웠다..
평소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시궁창같은 물에까지 손을 담궈, 보이는 데로 비닐을 줍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쓰레기를 줍던 중 농로에서 죽어서 납작하게 된 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미물이고 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수해피해현장에서 보게되니 더없이 처량해 보였다..
그래서 그 개구리를 길가에 묻어 주었다..
축사에서 일을 하시던 동네 아주머니께서 '개구리뿐만 아니라 축사 안에 있던 동물들이 다 죽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런 상관없는 개구리의 죽음에도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자식같이 키우던 가축들의 죽음을 손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보고 있어야 했던 그분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축사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맞은편의 오이하우스였다..
축사쪽보다 피해가 상당히 컸다..
하우스의 규모도 엄청 났거니와 주위 둑이 무너지면서 쓰레기매립지의 쓰레기들이 떠내려와 정말 산떠미같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때 밥을 먹으면서 "오이하우스"에서 일했다고 하니까 누군가 "오이가 있더냐?'고 물어 보았는데..
정말 그 큰 오이 하우스에서 오이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풍이 오기전 그 하우스안에는 2~3일이면 수확이 가능한 다 자란 오이들이 있었다고 하우스 주인이 말하시는데..
'얼마나 아깝고 상심이 컸을꼬.'하고 동감이 되었다..
그러고나서 다시 오이하우스를 보니..
내 눈에 보이는 비닐과 쓰레기들은 단순히 시키니까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고, 그것들이 땅속에 그대로 묻히면 이 다음 농사도 짖지 못하게 될게 뻔한 일이었다..
태풍피해를 입으면 땅을 못쓰게 된다고 하는 말이 무슨말인지 잘 몰랐는데..
눈으로 직접 보니..
수해는 단순히 물에 잠겨 농작물과 시설물을 못쓰게 되는 피해 이상의 엄청난 것이었다..
오이하우스 주인은 하우스 근처에 있는 컨테이너에 살고 계셨는데..
그 컨테이너는 동네 끝까지 떠내려가 살 집도 없어 아는 동생네 집에 얹혀 있다고 하셨다..
집도 없고 하우스도 다 망가졌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한달안에 쓰레기를 치우고 하우스를 다시 지어서..
겨울에 수확할 농작물을 재배할 거라고 하셨다..
일상의 작은 시련에도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그 아주머니의 말씀은 아주 큰 충격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재해를 입고도 이렇게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분들 앞에서 나자신이 정말 초라하고 나약하게 느껴졌다..
그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나의 죄업들을 주워 담는다는 생각으로 정말 죽기 살기로 열심히 쓰레기를 치웠다..
오후동안 네푸대도 넘게 하우스의 비닐을 줍고, 오이 가지를 지탱하던 집게를 떼고 나니 하우스 안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처음에 하우스 안을 들어서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눈 앞의 비닐들을 줍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지나온 길이 깨끗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보람을 느꼈고..
내가 한 일에 감격하여 마음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그 하우스 주인과 동감이 되어 일을 하고 난 뒤에 하우스를 보니..
아직도 구석에 남아 있는 쓰레기들과 철거해야 할 철재 골조들, 앞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농사와 여러 가지 경제적인 걱정들로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시간이 다 되어 하우스를 나서면서 구석에서 아직도 쓰레기를 줍고 있는 주인과 그 아들을 보니..
마음이 무척이나 처연해졌다..
'나는 오늘 하루의 경험으로 끝나고 말 일이지만..
이 분들에게는 언제까지나 마음에 남는 아픔의 흔적이겠구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는 내가 지나온데로 깨끗해지던 하우스의 고랑이 떠올랐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지나고 보았을 때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깨끗하고 부끄럼없는 길이 되도록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겠다.
* solsolsong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0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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